3줄 요약
- 📌 약 150만 명을 분석한 미국 메디케어 연구에서, 2회 접종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싱그릭스)을 맞은 사람은 미접종자보다 치매 위험이 33% 낮았습니다.
- 📌 단순 통계가 아닙니다. 생일 하루 차이로 접종 자격이 갈린 ‘자연실험’에서도 접종군의 치매 발생이 20% 낮아, 인과관계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 📌 다만 ‘치매 백신’은 아닙니다. 주된 효과는 대상포진 예방이며, 치매는 부가적으로 관찰된 연관성입니다.
대상포진 주사 한 방이 뇌를 지킨다?
대상포진을 앓아본 사람은 그 통증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발진을 막으려고 맞는 주사가 전혀 다른 곳, 바로 뇌의 노화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알츠하이머 분야 권위지 Alzheimer’s & Dementia에 발표된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약학대학 연구팀(Susan dos Reis 등)은 65세 이상 메디케어 가입자 약 150만 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2회 접종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상품명 싱그릭스)을 완료한 502,845명과, 접종하지 않은 1,005,690명을 비교한 결과입니다.
차이는 작지 않았습니다. 백신 접종군은 미접종군 대비 모든 유형의 치매 위험이 33%, 알츠하이머병은 28%, 혈관성 치매는 33% 낮게 나타났습니다. 대상포진 발진을 막으려고 맞은 주사가, 치매 통계까지 흔든 셈입니다.
물론 한 연구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비슷한 신호가 전혀 다른 설계의 연구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보는 근거: 33%, 그리고 20%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백신 맞는 사람이 원래 더 건강해서 그런 거 아닌가?” 타당한 의심입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백신도 챙기고, 운동도 하고, 검진도 받습니다. 이른바 ‘건강한 피접종자 편향(healthy vaccinee bias)’입니다. 메디케어 연구처럼 접종군과 미접종군을 비교하는 관찰연구는 이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연구팀도 동반질환·소득 등을 보정했지만, 추적 기간이 3년 이하로 짧다는 점과 함께 이 한계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편향을 거의 제거한 연구가 2025년 4월 Nature(641권 438–446쪽)에 실렸습니다. 스탠퍼드대학의 Markus Eyting과 Pascal Geldsetzer 연구팀은 영국 웨일스의 독특한 제도를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으로 활용했습니다.
웨일스는 대상포진 백신 도입 당시, 1933년 9월 2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 출생자는 평생 접종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후 출생자는 접종 자격을 줬습니다. 즉 생일 하루 차이로 한 집단은 백신을 맞을 수 있었고, 다른 집단은 맞을 수 없었습니다. 두 집단은 나이도, 생활 습관도 사실상 동일하지만 ‘접종 가능 여부’만 갈렸습니다.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RCT)을 일부러 하지 않고도, 그에 가까운 비교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를 ‘회귀불연속 설계(regression discontinuity design)’라고 부릅니다.
71~88세 약 28만 명을 분석한 결과, 백신 접종이 가능했던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이후 7년간 치매 진단 위험이 약 20%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효과가 여성에서 더 뚜렷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단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 쪽으로 무게를 실어준 결과입니다.
여기에 2024년 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옥스퍼드대 Taquet 연구팀의 분석(20만 명 이상)도 한 조각을 더합니다. 이 연구는 옛 생백신보다 재조합 백신(싱그릭스)을 맞은 사람에서 치매 없는 기간이 더 길었다고 보고했는데, 치매로 진행한 사람들 기준으로 약 164일의 ‘무진단 기간’이 추가됐습니다. 백신 종류에 따라 신호의 세기가 달랐다는 점은, 뒤에서 다룰 메커니즘 논쟁의 핵심 단서가 됩니다.
왜 효과가 있을까: 두 가지 경쟁 가설

“백신이 어떻게 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나?” 현재 과학계에는 서로 경쟁하는 두 가설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둘 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점입니다.
가설 1 — 바이러스 재활성화 차단. 대상포진의 원인인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ZV)는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뒤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경절(척수·뇌신경 주변 신경 다발)에 잠복해 수십 년을 숨어 지냅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면역이 약해지면(면역 노화) 다시 깨어나 대상포진을 일으킵니다.
문제는 이 재활성화가 피부 발진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VZV가 깨어나면 혈관 벽에 염증을 일으켜 뇌혈관병증(cerebral vasculopathy)을 유발하고, 만성적인 신경염증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2025년 Nature Medicine에 실린 별도 연구도 VZV 재활성화와 치매 위험 증가의 연관성을 보고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런 사슬입니다. 수두 → VZV 잠복 → 면역 노화로 재활성화 → 혈관 염증·신경염증 → 인지 기능 손상 누적. 백신이 재활성화를 막으면 이 사슬의 중간 고리가 끊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생백신(조스타박스)에서도 치매 감소 신호가 나온 것은 이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가설 2 — 면역증강제(AS01)의 직접 효과.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재조합 백신 싱그릭스에는 AS01이라는 면역증강제(adjuvant)가 들어 있습니다. 면역증강제는 백신의 면역 반응을 강하게 끌어올리는 보조 성분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AS01이 바이러스 차단과 별개로, 선천 면역을 ‘훈련(trained immunity)’시켜 뇌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가설의 강력한 단서가 2025년 발표된 약 43만 7천 명 대상 연구입니다. 같은 AS01 면역증강제를 쓰는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백신을 맞은 사람에서도 치매 위험 감소가 관찰됐습니다. RSV 백신에는 VZV가 들어있지 않은데도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바이러스 차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재 가장 균형 잡힌 해석은 “둘 다일 수 있다”입니다. 옛 통념은 치매를 아밀로이드·타우 단백질이 쌓이는, 거의 막을 수 없는 노화 현상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위 연구들은 감염과 면역 조절이라는 새로운 창으로 치매 예방을 바라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생백신은 가설 1을, 재조합 백신의 더 강한 신호는 가설 2의 기여를 암시합니다.
한국인에게 주는 시사점

이 연구가 한국에서 특히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국내 추정 치매 환자는 약 105만 명으로, 65세 이상 약 10명 중 1명꼴입니다. 치매 관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연간 수십조 원에 이릅니다. 치매 위험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는 단서라면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상포진 자체의 부담도 큽니다. 국내에서 대상포진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매년 70만 명을 넘고, 고령일수록 신경통 등 합병증 위험이 높아집니다. 즉 한국 고령자에게 대상포진 백신은 ‘치매 예방’을 떠나 그 자체로 고려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문제는 비용과 접근성입니다. 재조합 백신 싱그릭스는 국내에서 50세 이상 등을 대상으로 접종할 수 있지만 비급여라, 병원마다 다르지만 2회분 합쳐 대략 40만~50만 원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고령자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지원하지만, 지원 대상·연령·백신 종류가 지역마다 제각각이고 상당수는 예전 생백신 위주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가 쌓이면, ‘대상포진 예방’에 더해 ‘치매 위험’까지 고려한 백신 급여·지원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습니다.
위 표처럼 백신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약독화 생바이러스를 쓰는 생백신은 1회 접종이지만 면역저하자에게 제한이 있고 공급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재조합 백신은 2회 접종(2~6개월 간격)에 대상포진 예방률이 90%를 넘고, 치매 연관 신호도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근거가 흥미롭다고 해서 과도하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아래는 현재까지의 근거에 기반한 현실적인 행동 지침입니다.
- 50세 이상이라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의료진과 상담하세요. 핵심 동기는 어디까지나 대상포진과 그 합병증(특히 신경통) 예방입니다. 치매 위험 감소는 ‘덤’으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만성질환이나 면역 상태에 따라 적합한 백신 종류가 다르므로 전문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 ‘치매를 치료·예방하는 백신’이라는 표현은 경계하세요. 현재 근거는 모두 ‘연관성’이며, 인과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진행 중인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나와야 보다 분명해집니다. 광고나 과장된 정보에 휘둘리지 마세요.
- 백신 하나에 의존하지 말고 위험요인을 함께 관리하세요. 2024년 Lancet 치매 위원회는 고혈압, 청력 저하, 흡연, 신체 비활동, 당뇨, LDL 콜레스테롤 등 교정 가능한 위험요인 관리만으로 치매의 상당 부분을 늦추거나 줄일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백신은 그 퍼즐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 접종 시기와 일정을 챙기세요. 재조합 백신은 1차 접종 후 2~6개월 안에 2차를 맞아야 효과가 온전합니다. 1차만 맞고 중단하면 예방 효과가 떨어집니다.
- 비용·지원 여부를 미리 확인하세요. 거주 지역 보건소나 지자체의 대상포진 백신 지원 사업, 지원 대상 백신 종류를 확인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정리
서로 다른 설계의 대규모 연구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과 ‘연관’된다는 신호입니다. 150만 명 메디케어 데이터의 33%, 웨일스 자연실험의 20%, 그리고 두 갈래 메커니즘 가설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일관됩니다.
그러나 ‘연관’과 ‘인과’는 다릅니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현명한 태도는, 대상포진 예방이라는 분명한 이유로 접종을 고려하되, 치매 관련 효과는 앞으로의 임상시험이 확인해 줄 추가적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접종 여부와 백신 선택은 반드시 본인의 건강 상태를 아는 전문 의료인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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